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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바울의 부활증거 (행26:19-32)
작성일 :  2019-07-04 13:50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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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부활증거 (26:19-32)

우리는 여기 참된 삶의 사실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이 삶을 얻고 난 다음에 너무 좋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부활소망에 불타고 있던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부활진리 때문에 좋아서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한사코 이 예수부활사실을 나타내고 자랑하고 증거하기를 밥 먹기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저 로마의 고관 아그립바왕과 베스도총독 앞에서 나타낸 예수부활증거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적 사실이라는 증거입니다.

, 하나님의 계약 성취로 이루워졌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이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한 것은 오직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했습니다(22,23). 또한 이 모든 것이 선지자의 글대로 되었다는 사실입니다(2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구약성경 예언 계약에 근거한다는 이 말은 그의 부활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워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이것이 어떤 사람의 조작에 의한 것도 아니고 바울 자신의 주관적 사상의 착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설계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이루워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사활(死活)에 대하여 456번이나 예언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천하 만민 앞에서 이루워졌다는 것이 바울의 부활증거입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만천하에 공개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26). 사실이 아닌 것은 신화나 전설입니다. 예를 들면 단군신화, 석탈해왕이나 박혁거세왕의 사기(史記)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은 역사적 사건에 기준하였다는 여기에서 바울의 전도는 집중적인 호소력을 내뿜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사활사건은 그 원수들앞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원수들의 손에 의해서 자행되었고 그의 부활하심도 파수하던 로마 군병들 앞에서 행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또한 그의 부활 사실이 40일 동안 여러 시각에 여러 모양으로 여러 장소에서 나타났습니다(고전15:3-8).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담대함이 있으며 영향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역사를 역행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바울의 부활증거를 방해하고 괴롭히고 죽이려 했습니다.

.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자신의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의 불을 뿜는 전도도 역시 이 세상 벼슬아치들에게는 그리 호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아그립바왕은 냉담했고 베스도는 바울을 가리켜 미쳤다고 했습니다. 아그립바왕은 바울의 부활전도를 적은 말로 폄훼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부활증거를 미치광이 짓으로 치부하는가하면 인간의 생명문제인 부활증거를 적은 말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참으로 생명의 존귀성을 모르는 말이요 신령한 이치에 무지한 자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전도자는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25)라고 했으며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니다(29)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그립바와 베스도는 이 크고 중대하고 급한 문제를 등한히 여기고 미친 짓으로 보고 오히려 적은 일로 보니 바울의 가슴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부활문제는 인생의 것입니다. 인생만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인생인 이상 바울의 부활증거를 적은 말로나 미친 짓으로 넘겨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바울의 부활전도는 곧 나의 것이고 나를 상대한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왜 저 바울과 같은 부활체험(12-18)이 없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실히 답해드립니다. 저나 여러분도 바울처럼 부활체험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부활체험은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사도들)의 부활체험이 영감된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성경말씀이 그대로 믿어질 때 곧 나는 사도들의 부활체험, 바울의 부활체험을 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삼스럽게 별다른 이상을 통하여 새로운 부활체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영감의 기록을 믿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심은 곧, 놀라운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케 하는 유일하고도 정확한 하나님의 지혜의 방법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이 사실의 복음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속했던 유대교와는 비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자라온 대학도시 다소의 철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부활의 복음과 운명을 같이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 앞에서든지 이 부활소망의 기쁨을 증거하다가 이제 베스도와 아그립바왕 앞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부활증거 때문에 염병 취급당했고, 나사렛이단의 괴수, 성전을 더럽히는 자, 미친 자, 40명의 암살자들의 위협을 당했고 쇠사슬에 매이기도 했고 끝내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예수부활증거나 부활소망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말 사자처럼 담대했습니다. 수다한 원수들의 위협 앞에서도 위엄있게 호령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부활체험의 고상한 지식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모든 신자가 이러한 바울의 예수부활체험을 갖고 이를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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